시끌시끌한 지방선거에 이어 월드컵까지…. 연일 들려오는 쩌렁쩌렁한 소음에 당신의 귀는 안녕하신지요. 호프집 텔레비전이 길가로 나오면서 한밤에도 고막이 쿵쿵 울리시죠. 아마, 승리를 부른다는 ‘부부젤라’(남아공의 전통 나팔) 소리가 울리는 경기를 보다보면 아예 고막이 저절로 흔들릴지도 모릅니다. 그 악기의 소음 한계치가 130데시벨(㏈)에 육박하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그 우렁우렁한 고음이 반갑기만 하답니다. 소음이 듣기 좋다니 좀 이상하죠? 후후, 제가 그 유명한 사오정이거든요.
근데, 웬일이냐고요? 요즘 저보다 더 심한 ‘난청족’이 늘고 있는 듯해서 경고 좀 하려고 깜짝 출현했습니다. 남의 말도 못 알아듣는 사오정이 뭘 아냐고요? 쳇, 무시하지 마세요. 저도 처음부터 말귀를 못 알아들었던 건 아니니까요.
<서유기>에서는 말귀 잘 알아듣는 조용한 성품의 수도자였습죠. 한데 허영만이라는 화백이 <날아라 슈퍼보드>를 그리면서 멀쩡한 제 귀를 머리 주름에 파묻어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귀머거리가 되고 말았죠. 원망? 저, 그런 거 안 합니다. 덕분에 꽤 유명해졌으니까요 ^^. 아무튼 전문가들에게 이야기도 듣고, 최신 자료도 들여다보며 정리한 난청 정보이니까 잘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귀 이야기. 생김새는 나뭇잎·조개·고무신처럼 다양하지만, 귀는 섬세하고 정밀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찌나 정밀한지 청력이 좋은 사람은 무려 40만 가지 이상의 소리를 구별해낸다고 하네요. 더 예민한 사람은 수소 분자 크기의 10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고막의 울림도 감지하고요. 그 귀를 통해 소리를 듣는 경로는 간단합니다. 귓바퀴에 모인 소리가 이소골로 진동을 전달하고, 그 진동이 달팽이관에서 전기적인 신호로 변환되어 청신경과 뇌를 자극해 소리를 듣는 거지요.
문제는 그 진동이 지나치게 클 때 발생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85㏈(데시벨) 이상 소음에 8시간 이상 노출되면 청력이 손상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85㏈이면 거리의 확성기 소리와 대형 트럭 소리의 중간(66쪽 표 참조)쯤 되는데, 얼마나 시끄러운지 짐작이 가시죠. 물론 그 이상의 시끄러운 소리는 더 짧게 들어도 귀에 문제가 생깁니다. 120㏈ 규모의 폭발음은 곁에서 단 한 번 들어도 귀가 상하고요.
이 때문에 WHO와 대한이비인후과학회는 소음 피해를 줄이려 소음 노출 기준을 정해놓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90㏈ 소음은 8시간 이상 들으면 위험합니다. 소리는 5㏈ 올라가면 그 크기가 두 배로 커지고 노출 시간은 반대로 2분의 1로 줄어드는데, 따라서 95㏈ 규모의 소음은 4시간 이상 듣지 않는 게 이롭습니다. 100㏈ 소음은 2시간 이상, 105㏈ 소음은 1시간 이상 노출되지 않는 게 좋고요.
소음, 기억력보다 집중력에 더 나빠
그렇다면 강한 소음은 얼마나 해로울까요. 뭐, 복잡 다양합니다. 전신 피로와 수면 장애 같은 예기치 못한 후유증을 유발하는가 하면, 자율신경과 뇌하수체를 자극하는 생물학적 자극제로 작용해 불안을 발생시키기도 하니까요. 또 혈압을 올리며 위액 분비를 줄여서 소화를 방해하고, 혈중 마그네슘 농도를 떨어뜨려 심장병을 악화시킨다는 연구 보고도 있습니다.
김희남 박사(전 대한이비인후과 이사장·하나이비인후과)는 “소음은 집중력보다 기억력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합니다(그래서 수리탐구 등 집중력을 요하는 과목은 아주 조용한 환경보다 약간 소음이 있는 공간이 유리하다고…).
가장 치명적인 소음 피해는 뭐니 뭐니 해도 난청입니다. 다른 사람 말이나 새소리·파도소리 등을 못 알아듣는 고통, 겪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난청은 내이에 위치한 청각 신경의 말단이 소음에 손상되어 그 기능이 퇴화해 나타납니다(일부 사람은 유전·감염·질환·노화로 난청 환자가 됩니다).
난청이 생기면 처음에는 고주파를 못 듣다가 서서히 주변 소리까지 안 들립니다. 이비인후과에서는 보통 시계 초침 가는 소리 정도(10~20㏈)는 들어야 청력이 정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냉장고의 웅 하는 소리(40㏈)를 못 듣는 정도가 되면 장애가 있다고 진단하죠. 이승철 소리이비인후과 원장은 “70~80㏈의 소리를 희미하게 듣는 수준이라면 심각한 상태다. 그만큼 청각기관 세포가 많이 손상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라고 말합니다.
더 안타까운 점은 증세가 서서히 나타나 본인도 난청을 잘 감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상태에서도 일상 대화에는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고음에는 취약하죠. 특히 오페라의 소프라노 소리 같은 고음이 잘 안 들립니다. 스·츠·쯔·크·프·즈·흐 같은 자음 섞인 단어도 잘 안 들릴 가능성이 높고요. 더 심해지면 대화 소리를 드문드문 듣게 되어 저처럼 엉뚱한 대꾸를 늘어놓게 되지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소리를 지나치게 키워 주위의 눈총을 받는 일도 흔해집니다.
난청에 취약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간혹 시끄러운 소리에 잘 견디는 사람이 있지만, 노래방이나 클럽에서 신나게 한두 시간 놀다 나오면 누구나 귀가 멍멍해지거나 예민해지기 마련이죠. 요즘 가장 많이 난청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텔레마케터, 교통경찰관, 공항 근무자, 일부 군인·예비군 등이라고 합니다. 텔레마케터야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의 높고 낮은 목소리를 다 들어야 하니 귀가 피곤하겠죠. 교통경찰관도 트럭의 굉음이나 경적에 시달리니 귀가 쉴 틈이 없을 테고요. 활주로 근처 공항 사람들 역시….
그런데 군인이나 예비군은 왜? 바로, 총 때문입니다. 사격 훈련 시 귀마개를 하는 부대가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맨 귀로 총을 쏘게 하는 데가 있는 모양입니다. 사격 소음 규모가 100㏈ 이상이니, 난청·이명 환자가 생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난청 환자의 남녀 비율이 약 3대1이라는 점입니다. 원인이 무엇일까요?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여성보다 높은 남성 사망률처럼, 남성이 처한 작업·생활 환경이 소리에 더 취약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하고요.
소음성 난청 환자, 2007년에만 4741명
최근에는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다가 귀를 상한 젊은이가 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2007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소음성 난청 환자는 모두 4741명이었습니다. 이는 2003년의 2858명보다 꽤 많이 늘어난 수치입니다. 소리 환경이 그만치 안 좋아졌다는 뜻이겠죠. 연령대별로는 어떨까요? 10~30대가 무려 48.5%나 되었습니다(10대 345명, 20대 943명, 30대 885명). 60대 이상 노인(11.2%)보다 4배 이상 많으니, 요즘 젊은이들이 얼마나 심각히 소음에 노출되었는지 알 수 있겠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난청이 치료된다는 점입니다. 그렇더라도 가장 좋은 치료법은 역시 예방입니다. 지하철 등에서는 이어폰 사용을 자제하고, 어쩌다 듣게 되면 볼륨을 75㏈ 이하 내에서 들으라고 충고합니다. 85㏈ 수준의 소리를 듣더라도 하루 8시간 이상 안 듣는 것이 좋고요.
전문가들에 따르면, 보통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듣는 MP3나 DMB 소리는 100㏈이 넘습니다. 주변이 시끄러우니까 음량을 최대한 높이기 때문에 소리가 점점 커지는 거죠.
그러나 도시인이 소음을 피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도처에 소음이 널려 있으니까요. 3년 전, 정성수 박사(한국표준과학원 역학센터) 팀이 2년간 KTX·지하철·고속버스·시내버스의 저주파 소음(뇌와 장기에 영향을 주고, 호르몬 분비에 이상을 유발하며, 스트레스를 양산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을 조사한 결과, 꽤 심각했습니다.
KTX 객실 내에서는 굴착기가 내는 소음 세기(100㏈)의 저주파 소음이 발생했고, 서울 지하철에서는 운행 내내 (노선별로 차이가 있었지만) 대형 트럭이 지나가는 수준(95㏈)의 저주파 소음에서부터, 굴착기 소음과 록밴드 연주 수준의 소음(110㏈)이 생겼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어디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겠어요?
그러나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닙니다. 환경이 열악해서 어쩔 수 없이 소음을 들어야 한다면 청력 보호 장구를 착용하세요. 대한이비인후과학회는 95㏈ 이상 소음이 있는 곳에서는 귀마개·귀덮개를 착용하라고 권합니다. 이들 청력 보호 장구를 착용하면 소음 흡수량이 25~51% 정도 줄어든다고 하니, 꼭 챙기시기를…. 특히 대형 트럭 운전자, 버스 기사, 착암기 기사, 사물놀이패 단원, 대로변 상인 등에게 적극 권합니다.
소음에 노출되어 귀가 먹먹하거나 소리가 잘 안 들리면 서둘러 전문병원으로 가십시오. 2주 이내에 약물치료를 받으면 호전될 확률이 꽤 높으니까요. 병원에 가면 아마 순음청력검사(다양한 주파수의 소리를 들려주며 청력을 측정한다)나 어음청력검사(일정 단어를 들려주며 판별 능력으로 청력을 측정한다)를 할 겁니다. 만약 그 검사에서 이상이 확인되더라도 큰 걱정은 하지 마세요. 웬만하면 비타민B·순환 개선제·혈관 확장제·스테로이드 호르몬제 등과 고압산소요법 등으로 증세를 완화하거나 치료할 수 있으니까요.
어떤가요? 귀와 소리의 세계, 무지 복잡하죠. 그렇더라도 결론은 하나입니다. 소음 조심해서 난청에 시달리지 말자! 모쪼록 월드컵 소음·매미 소음에서 잘 비껴나 저처럼 ‘사오정’이 되지 않기를….
발췌 : 화순 투데이 http://www.hwasuntoday.com/sub_read.html?uid=5722